<한국산업 중흥의 원조>
항상 일본차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마침내 혼다를 눌렀다. 거기에는 숙환(지병)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약점의 극복이 있었다.
자국 기업이 세계에서 활약할 때마다 기꺼이 가득 채운 기사를 게재하는 한국 매스콤. 미국 파워.앤드.어쏘시에이트가 발표한 <2004년 미국 자동차 초기 품질 조사>의 중형차 부문에서 혼다와 나란히 현대자동차가 2위를 획득한 때에는 각 신문사 모두가 <토요타에 따라 붙다>라고 전 할 정도로 기쁨은 컸던 것 같다.
일본 진출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HYUNDAI>의 지명도는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해외에 가면 <H>의 문자는 혼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계를 질주하고 있다. 이미 2004년 세계 판매대수는 318만대로 혼다를 누르고 업계 8위에 올랐다. 신흥시장인 중국에서는 2005년 1월의 판매대수로 폭스바겐을 누르고 톱의 위치에 올라 섰다.
歐洲에서도 현대의 판매 쉐어는 2.1%(구주 자동차공업회 집계). 계열회사인 기아를 더한 3.2%의 쉐어는 토요타 5%와 日産(닛산)의 2.5%와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이전의 한국차라고 하면 <싸겠지? 품질이 좋지 않겠지?>였다. 그러한 레테르(Letter)는 이미 불식 되어진 것 같다.
<品生品死>.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다>라고의 의지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신조이다. 최근부터 정회장은 <차의 품질 향상은 내가 확실하게 할 테니까 경영진은 세계 전략을 입안 하라>라고 경영진에게 계속 말했을 정도로 품질 향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 산업건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한국 제일의 大재벌을 창조한 故 정주영씨가 1967년에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다. 포드와 三菱(미쯔비스)자동차와의 기술 제휴로 기술 향상을 도모,1976년에는 <포니>로 첫 수출을 달성 했다. 轉機가 온 것은 2000년에 정주영씨가 사망하기 전후이다. <황태자의 난>이라고 불린 현대 그룹의 후계자 쟁탈이 발발하여 결국에는 정주영씨가 6남의 故 정몽헌씨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차남인 정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는 그룹으로부터 이탈 했다.
정몽구 회장은 요절한 장남 대신에 실질적인 장남인 자신이 후계자에 선택되지 못한 이유를 <지금까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구입자로부터 항의와 리콜로 부친으로부터 신뢰 되어 지지 못했다>라고 주변에 흘렸다고 한다. 이때의 아픈 경험이 그 후의 품질 지상주의로 이어졌다 라고 한다.
2004년의 매출액은 과거 최고인 약 28조원을 기록. 국내 쉐어도 50.3%, 기아를 포함하면 73%로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는 한편으로 매출액의 60%는 해외가 점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를 받은 품질은 <3년 후의 내구성과 품질에서는 문제가 존재한다>,<저가격인 만큼 소비자의 기대가 처음부터 낮다>라고 업계 관계자는 지적한다. 브랜드 파워도 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열세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정회장은 미국에서 금년 하반기부터 판매 되는 <FE 소나타>에 기대를 걸고 있다. 토요타의 <캄리>,혼다의 <아코드>와 같은 클라스의 차를 투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品生品死>가 어디까지 通用할 것인가? 를 예의 주시 하기 때문이다. 금년은 틀림없이 현대자동차에 있어서 勝負의 해가 된다.
☞.일본 경제주간지 <東洋經濟>의 특집 기사인 <韓流經營/삼성전자,LG전자,SK텔레콤,현대自>중에서 현대자동차 편 原文를 소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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