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經비즈니스] 會社再建,당신이 主役!(上)

Date 11/04/2004   Hits 1789

<스미또모(住友)금속공업>

주가가 40엔을 넘어 경영위기를 벗어나,今期 23년 만에 과거 최고치를 예상한다. 제철소의 주요설비를 정지하는 등 성역 없는 개혁으로 <와카야마(和歌山)제철소 문제>를 해결했다. 9월에는 국내에서 25년 만에 新高爐도 가동,완전 부활의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다.
<사장이 수치를 당했다>라고 감정에 복받쳐 울은 사원도 있었다 라고 한다. 그 정도로 회견의 모습은 스미또모금속공업(以下 스미또모)의 사원에게 있어서 충격적 이었다.
2001년12월11일. 스미또모 사장인 下妻博(67세)는 쭉 늘어서 있는 기자에,매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발표한 것은 신일본제철과 스테인레스 사업을 통합하는 등 광범위한 제휴이다.
스미또모의 주가는 이날 일시 40엔까지 급락하고 있었다. 업적이 바닥을 헤메고 있는 스미또모에의 <퇴장 선언>였다. 시장에는 <위험한 회사 리스트>화 된 것이 나돌아,그 중에는 스미또모도 있었다. 下妻사장에 남겨져 있던 것은 다음날로 예정한 회견을 앞당기는 정도 밖에 없었다.
급하게 예정을 변경하여 신일본체철의 사정이 있어 혼자 회견에 임한 下妻 사장. <회사가 살아 남기 위해서 라면,제가 피에로가 되어도 좋다 라고 하는 기분 이었다>.
1999년 3월期와 2000년3월期,스미또모는 각각 649억엔,637억엔이라고 하는 거액의 경상적자에 빠져 있었다. 원인은 철강수요의 곤두박질과 <와카야마 제철소(제철소 이름임/POSCO의 광양제철소 라고 하듯이) 문제>였다.
와카야마 제철소(和歌山縣 和歌山市 소재)와 가시마(鹿島) 제철소를 주력으로 하는 스미또모는 생산성이 뛰어난 가시마 제철소의 조업률 유지를 우선시. 손해를 보는 상태로 와카야마의 조업률은 항상 변동하고 채산의 떨어짐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와카야마 단독으로 500억엔의 적자를 낸 적도 있다. 94년에는 철강 불황의 속에서 社運을 걸고 시-무레스管 설비에 800억엔도 투자. 96년에도 스라브라고 하는 반제품을 제조하는 설비에 500억엔을 투입했다. 남은 것은 거액의 감가상각 부담 였다.
一轉하여,2005년 3월期의 連結業績은 매출액이 전기比 7% 증가한 1조2,000억엔,경상이익이 전년대비 75% 증가한 1,200억엔을 예상한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수요급증에 더해 최대의 경영과제를 해결한 것이 再建으로 이어졌다. 계획대로 나가면,23期만의 최고수익 更新이 된다.
재건 과정에서는 와카야마 제철소의 高爐를 分社하고,대만의 중국철강(CSC)과의 공동경영으로 전환했다. 내년 3월에는 스라브로부터 자동차용 薄板 등을 만드는 주력설비의 <熱間冷延라인>도 그만 둔다. 생존을 위해 과감히 버려진듯이 보이는 와카야마 제철소. 하지만 약30년만의 풀생산에 열광하는 와카야마 제철소에 비장감은 없다. 있는 것은 스스로 해결에 최선을 다해 실현했다라고 하는 사원의 자신감과 활기다.
<高爐 정지의 검토까지는 禁忌다 라고 말하는 여유는 바로 없어졌다>. 기획업무부 전임부장인 柴富田浩(50세)는 말한다. 1999년 4월부터 참가한 <와카야마 경영개혁 프로젝트 팀(以下 經프로)>. 柴富田浩을 비롯 현장 부장 크라스 8명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 2년안에 와카야마를 흑자전환 시키는 대책을 세우는 프로젝트이다.
현장주도의 팀이고,개혁에 필요한 전권을 부여받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經프로는 주어진 역할 이상으로 와카야마 再建에 공헌했다.
하나는,經프로가 세운 코스트삭감 대책이다.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구조조정을 내서워 실제로 2000년 3월期,2001년 3월期의 2년간 200억엔,와카야마의 코스트를 절감했다. 이것이 2001년 3월期 경상흑자 확보로 이어 졌다.
또 하나는,와카야마의 熱延라인을 정지한다 하고 하는 재건책의 중핵이 된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 것이다.
柴富田浩는 말한다. <高爐를 없애는 것과 똑같다 라고 하는 정도로 제철소 내에서 반감을 산 아이디어다 라고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高爐의 조업률을 높이기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經프로 멤머의 인식 였다. 그러한 각오가 없으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와카야마에서 태어나,와카야마에서 자랐다. 1981년 입사해서부터 계속 와카야마 제철소에 있었다. 그런 柴富田浩들, 와카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야 말로 제철소 살리기 위한 지혜가 분출했다.
물론,본사에서도 같은 기분으로 사원이 분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경영기획부 그룹장인 西浦新(46세,현 가시마 제철소 강판.건재 사업부 기획부장)이다. 2000년 10월,그룹長에 승진해 처음 맡은 큰 일이 와카야마 제철소의 再建의 마무리 役이었다.
기존에 同年 3월,스미또모는 조강.선재 등을 제조하는 小倉(후쿠오카현 큐슈시),直江津(니카타현 조에쯔시/지진 피해가 제일 심한 곳)의 두 제철소를 분사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분사에 있어 두 제철소의 사원 전원을 전직 시켜 인건비 부담을 경감. 더욱이 新회사 설립시 든 등록면허세의 경감초치가 받아 들여지는 産業再生法 적용을 신청하는 등,부활을 향한 대처가 본격화하고 있다.
西浦新부장은 토요일,일요일에도 상관없이 下妻사장과 임원을 본사로 부른다. 경영기획부 중심으로 경리,법무 등의 스탭과 임원이 임원실에 모여 아침부터 토론했다. 점심은 근처에서 사온 샌드위치. 식사 시간도 아까운 토론은 밤까지 계속한 것도 자주 였다.
再建策의 방향이 선 것은 2002년 初頭이다. 이전에 터부시 됐던 <와카야마 제철소의 熱延라인 정지>가 이미 전제되어 있었다. 새로운 초점은 스라브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상대를 어떻게 찾는가?
여기까지의 激論를 리드해 온 西浦新였지만,실은 이 결론에는 허전하고 쓸쓸함도 느끼고 있다. 西浦新도 柴富田浩와 마찬가지로 와카야마 출신이다. 제철소에는 누구보다도 깊은 생각이 있다.
<친척도 많은 이가 일하고 있고,라인 정지로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문득 걱정이 되는 적도 있다. 하지만,와카야마를 모두 잃어 버리는 정도라면 대퇴골(=熱延라인) 하나를 제거해도 살아 남는 편이 낮다 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스라브의 판매처로서는 이때 제휴 교섭을 계속하고 있는 신일본제철 등이 유력 했다. 다음 후보는 스라브를 스폿토 판매한 실적이 있는 대만의 CSC이다. 고로의 조강 생산량이 부족해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스라브를 빈번하게 구입하고 있다. 이야기 하기 쉬운 거라면 일본회사들이고,안정적이고 판매를 우선하는 거라면 CSC이다.
그 결론을 내야 하는 2002년 7월,총 6명이 대만의 高雄市에 있는 CSC본사에 몰려 갔다. 일행 중에는 柴富田浩의 모습도 있었다.
교섭을 시작하면,CSC측은 …

☞. 계속하여 <會社再建 당신이 主役(下)>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