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經珠箏絿] 會社再建,당신이 主役!(下)

Date 11/04/2004   Hits 1844

<스미또모(住友)금속공업>

교섭을 시작하면,CSC측은 <곤경에 처해 있다면,스라브를 사주는 것도 좋지>라고 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기존에 열연라인의 정지는 신문이 보도해 누구도 알고 있었다. 명확하게 약점을 간파한 후에 교섭을 유리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속셈.
<구입할 의사가 없으면 와카야마의 고로를 정지해도 좋다>. 분노한 柴富田浩는 무심결에 말했다. 강경한 태도였다. CSC의 페이스로 진행시키려고 되어 있던 교섭의 흐름을 되돌리려고 라고 한 순간적인 판단이다.
첫날의 교섭을 끝낸 일행은 호텔에 돌아와 다음날의 작전을 수립했다. <저 태도는 무엇인가>와 <어쨌든,우리도 강경하게 임하자>. 그렇게 서로 확인했다.
교섭 2일째. 柴富田浩들은 CSC측의 변모에 놀랐다. 전일의 강경한 태도가 효과가 있었던건가? 一轉해서 호의적인 자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판매 계약을 신중히 성사시키고 싶다 라고 하는,그 쪽의 전향적인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꼭,전향적으로 토론 합니다>. 립 서비스라고 생각 할 수 있는 발언도 해가며,한번의 교섭에도 상관없이, CSC가 필요하다 하는 스라브의 품질과 양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한 토론이 나왔다, 교섭은 성공. 이후 월1회 정도의 베이스로 교섭을 반복,CSC와의 제휴는 급속하게 발전해 갔다.
교섭에서 CSC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노후화 된 와카야마 제철소의 설비였다. 와카야마의 高爐는 설치부터 40년이 경과해,통상 25년 정도의 <수명>을 넘기고 있었다. 거기에 2002년 9월에는 CSC 부사장을 리더로 하는 조사단 12명이 와카야마를 방문했다. 11월에는 CSC 사장이 스스로 일본을 방문해 高爐를 비롯한 설비를 세밀하게 시찰했다.
<와카야마의 외관은 나와 마찬가지로 오래됐지만,속은 나와 똑같이 젊은 것 같네요>. 제강부장으로서 시찰의 안내역을 맡아 온 岩田勝吉(49세)는 CSC사장이 말한 것을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高爐를 연명 시키는 기술은 岩田를 위시한 와카야마 사원들의 자랑의 하나이다. <잘 관찰하고 있다>. 결국은 외국기업과 상대를 경계하고 있던 岩田의 기분이 누그러졌다.
2002년 11월 14일에는 신일본제철,고베(神戶)제철소와의 상호 출자와 CSC와의 제휴를 축으로 하는 <新중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열연라인의 정지도 명기하고,외부에 정식으로 와카야마 문제의 <해답>을 제시했다.
아카야마 제철소 해체와 함께 취한 플랜에 사원은 동요했다. 와카야마의 노동조합도 태도를 강경해 있었지만,결국은 협력적인 태도로 변했다. 그 해 11월 19일,사장인 下妻와 노동조합 간부와의 협의가 양자의 거리를 좁히는 장이 되었다.
下妻,체철소장,부사장의 경영측 3인과,스미또모금속 와카야마 노동조합의 조합장인勝倉俊介(58세)등 집행부측 9인이 제철소 본관 3층의 응접실에서 처음으로 마주 했다. 당초는 경영측의 페이스. <와카야마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勝倉의 날카로운 물음에 대해서도 下妻사장은 부드러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표정이 일변한 것은 <실패한다면 경영책임을 질 각오가 있는가?>라고 勝倉이 강하게 몰아 붙였을 때다.


<나는 입사해서 바로,이곳의 열연라인의 초대 노무 담당이 되었다. 와카야마 제철소에의 생각은 여러분 이상으로 깊다>.
책상을 탁탁 두들기면서,<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기분으로 판단 했다>라고 호통치는 下妻사장. <사장으로부터 저기까지 들었다면,함께 땀 흘려 보자 라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 勝倉 등 노동조합 간부는 태도를 서서히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개혁 실현에 있어 최후의 장해가 제거 되었다.
2003년 11월 1일. 스미또모는 와카야마의 고로 등 上工程을 분사해,CSC와의 합작회사의 100% 자회사로 했다. 와카야마는 제철소의 심장부인 高爐를 外資와 공동 운영한다 라고 하는 국내에서 예가 없는 제철소로 다시 태어났다.
초점의 하나였던 열연라인은, 2005 3월에 정지되는 것이 정해져 있다. 그것과 더불어,와카야마에서 생산하고 있던 특수 薄板을 카시마 제철소에 이관하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카시마 제철소와 와카야마 제철소. 교류가 활발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2개의 제철소의 현장 사원이 지금은 함께 지혜를 짜고 있다.
<카시마를 위해 희생 되었다 라고 하는 불만의 감정은 이제는 사라졌다>. 일련의 개혁에서 카시마,와카야마의 製銑부장을 겸임하게 된 三宅貴久(49세)는 현장의 기분을 대변 한다. 생산 이관의 책임자인 카시마 제철소 부소장의 三木伸一(53세)도 똑 같은 것을 실감한다. <와카야마의 노하우가 카지마에서 활용한다. 잃어버린 것도 있지만,2개의 현장에 활기가 찾아와,전사적인 일체감이 생겨 나고 있다>.
때마침,금년 9월 29일에는 카시마에서 新高爐의 점화식이 있었다. 와카야마 문제로 회사가 흔들리던 중에, <설사 회사가 없어져도 일본에 鐵鋼業을 위하여>라고 주변의 반대를 누르고 下妻 사장이 결단한 新高爐가 兩 제철소의 현장 사원들이 지켜보는 중에 무사히 조업을 시작했다.
<도산도 각오하고 살을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회사를 재건하자!>고 한 중간 간부들의 생각. 그것은 新高爐의 등불이 향후 25년,계속 이어지듯이, 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스미또모금속공업의 현재 주가(132엔)와 최저 주가(02년11월19일/36엔)를 비교 하면 2년 만에 약 4배 향상 => 살을 도려내는 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