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커와 경영학(上)
11일에 서거한 경영학자 피터.드러커氏의 최대 공적은 <매너지먼트> 등 조직과 경영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탄생 시킨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학적인 분석에 치우치지 않고 스스로의 다채로운 경험에 근거한 직관을 중시한 탁월한 밸런스 감각 이다.
<企業 經營者가 가장 높게 評價>
고령이 되어서도 현역 연구자로서 활동을 계속 해온 피터.드러커氏가 사망 했다. 이전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Theodore Levitt 교수는 영국인 철학자인 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의 <모든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업적의 脚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을 예로 들어, 같은 일이 경영학에 있어서 드러커에 대해서도 적용 된다 라고 그의 업적을 칭송 했다.
경영학의 연구자와 기업 경영자 중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세계의 기업 경영자에 가장 많이 읽혀진 것은 드러커의 著作 이다. 일본에서도 비즈니스 관계의 서적에서는 늘 베스트셀러에 들었고 그의 사고(생각)에 심취한 기업인은 많다. 그는 경영 뿐만이 아니고 철학.역사.정치.경제에도 정통 했고, 종교에 대한 지식도 깊었다.
그러나,내용에 예리함 때문에 반발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문필가로 부르고, 著作은 정리와 모델,각주를 집어 넣은 학술적 스타일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재의 철학자>,<학자라고 하기 보다는 저널리스트> 라고 하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견해를 철저히 분석한 후의 비판이 아닌 내용의 선견성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라 젊었을 때부터 교실에서의 학업 보다 실학 지향이 강했다. Gymnasium(독일의 중등교육기관;수업년한 9년으로 대학 준비교육을 목적으로 한다.고전교양을 중시)을 졸업한 17세에 독일로 옮겨 무역회사에서 견습을 스타트로 증권 애널시스트,신문기자,영국에서는 상업은행 은행원,미국에서는 컨설턴트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후,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다. 그의 관찰력.통찰력에는 이 질 높은 다양한 직업 경험이 살아 있다.
영국 시절에는 일을 함과 동시에 켐브리지 대학에 출입하여 케인즈의 강의를 청강 했다. 드러커에 의하면 이 강의로부터 얻은 것은 상당히 많았지만, <케인즈를 필두로 경제학자는 상품의 움직임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나는 인간과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았다>(드러커)라고 경제학의 시점과 방법론에는 위화감이 있었던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의 최대의 공적은 사회와 기업의 현장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조직과 매너지먼트의 개념을 도출한 것에 있다. 현재의 경영에 있어서 일반화하고 있는 <경영 전략>,<사업부제>,<목표 관리>,<민영화> 등의 개념은 드러커가 창안해 냈다. 이들 개념은 스스로의 체험과 관찰이 기초가 되어 도출 되어 졌다. 당시의 최첨단 기업 GM에 관계한 경험으로부터 <회사라고 하는 개념>이 쓰여져,GE와 IBM 등 일류 기업의 컨설턴트로서의 활약이 名著 <현대의 경영>으로 결실을 맺었고 <매너지먼트>를 세상에 보급 시켰다.
기업인의 평가는 높아, 예를 들면 GE의 최고경영자(CEO)을 지낸 잭.웰치는 <GE에 대해서의 중심적 아이디어는 드러커氏로부터 얻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1969년에 출판된 <斷絶의 時代>는 정보화 사회에의 이행, <지식 노동>과 <지식 사회> 등을 예견하여 현재에 있어서도 오래됨을 느끼게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1993년의 <포스트 자본주의>에서는 다음의 시대는 지식이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智識 社會>인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여 사회에 있어서 조직은 그 관념으로부터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환기에 있다 라고 지적 했다.
발표한 미래 예측이 계속적으로 적중하는 것으로부터 드러커는 미래학자라고도 불리워졌지만, 본인은 그것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사회 경제회자(Social Economist)>라고 칭했다. 드러커가 항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분석의 중심에 두고 있었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논리 분석적으로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直觀에 의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하는 자세를 간파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스타트가 정치학 분야이고 그 영향이 컷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계속 하여 <드러커와 경영학(下)>가 이어 집니다>.
☞.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
오스트리아 빈 태생(1909. 11. 19 –2005.11.11) 미국의 경영자문가•교육자•작가.
그의 보수적인 저서는 현대 기업의 철학적•실제적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드러커는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후 독일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히틀러가 집권하자 1933년 영국으로 피신했다. 1937년까지 영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영업중인 영국계 은행의 고문으로 일했다. 또한 몇몇 영국계 신문의 외국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미국 시민으로 귀화한 그는 1950~72년까지 뉴욕대학교에서 경영학교수로 재직했고, 경영학 교육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제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년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 등이 있다. 그는 또한 2권의 소설을 썼다.
<經營 短信/ 한국 포스코, 11월22일 上場>
東京증권거래소는 한국 철강 최대기업인 포스코(POSCO)의 신규 상장을 승인 했다 라고 발표 했다. 11월22일에 上場 한다. 상장하는 것은 외국기업의 주식을 미국에서 매매할 때에 사용하는 미국 예탁 증권(ARD). 지금까지 외국 기업이 동경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경우는 現物株를 상장하고 있어 ARD는 최초의 케이스가 된다.
上場하는 것은 일본에서의 鋼材 거래 확대를 노린 <知名度 向上>(포스코)가 목적. 2/3가 歐美에 편중되어 있는 <株主의 多樣化>(포스코)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장에 동반해서 350만株 분에 상당하는 ARD를 일본에서 판매 한다. 포스코는 1994년에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있고, 이미 ARD가 유통 하고 있다.
포스코는 한국 최대 기업인 高爐 메이커. 2004년12월期의 粗鋼 生産量은 3,105만톤으로 세계 5위. 규모에서는 국내 대기업인 신일본제철과 JFE홀딩구스를 하회 하지만, 前期의 연결 순이익은 4,130억엔으로 국내 대기업을 능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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