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經濟新聞] 노무현流의 韓國(上)

Date 12/01/2005   Hits 1814

노무현流의 韓國(上)

<直言 信條의 포퓰리스트(Populist )>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 60주년에 한국의 정권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종래의 정치 수법에 한정치 않는 <유니크한 지도자> 라고 여기지는 노무현流의 정책은 한국을 좋치도 나쁘지 않게 바꿨다.
內政에서도 外交에서도 독자 노선을 밀고 나가는 대통령의 정책.사상의 底流에 무엇이 있는 것인가? 성립과 인맥을 추적하면서 한국 정권의 행방을 살펴 보기로 한다.

19일에 개막한 부산에서의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의 수뇌 회의. 노대통령이 고이즈미(小泉) 수상,부시 미국 대통령들을 한자리에 모신 정권 발족 후 최대의 <외교 쇼>가 되었다. 하지만, 노대통령 에게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의미도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변호사도 하고, 처음으로 국회의원도 되었다. 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적도 있다. 이 고향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 한다>. APEC와 병행해서 개최된 최고 경영책임자(CEO) 서미트에서 연설한 노대통령은 연설 초고가 되었던 말에 덧붙여 진정을 토로 했다.
부산 근교의 빈농의 집에 태어나, 가정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고교도 부산의 상업학교. 그로부터 9년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세무 전문으로부터 인권 변호로 변신. 反獨裁를 치켜세우고 인권 활동가로서 처음으로 국회 의원에 당선 되었다.
좌절과 영광. 부산에는 노대통령의 행동과 발상의 원점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도 근무 했던 변호사인 김광일氏는 부산에서 노대통령의 국회의원에의 길을 도와 주었다. 그 김광일氏는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혼재하고 그 때문에 감정의 자제가 잘 되지 않아 상식에 벗어난 言動을 한다> 라고 노대통령의 성격을 평했다.
정치를 왜 시작했는가? 노대통령은 <憤怒>라고 답한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 있는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과제 이다> 라고. 1988년, 과거 軍政의 부정 부패 등을 규탄 하는 국회 청문회에서 일개의 국회 의원이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규탄. 이 자세가 국민의 지지를 모아, 유망한 정치가로서 浮上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사전 공작보다 국민과의 직접 대화 중시, 정면 돌파의 승부 정치, 애매함을 싫어 하는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국민대학의 김형준 교수는 <內政에서도 外交에서도 자극적인 대화를 모색하고, 돌출 발언으로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노대통령의 정치 수법 이다> 라고 총괄 한다.
APEC에 맞춰서 열린 한일 수뇌회담. 일본측 설명에서는 노대통령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국에 대한 挑戰> 이라고 비난 했다 라고 한다. 외교 의례를 무시하고 확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信條이고 더 나아가서는 국민의 支持를 모은다 라고 생각 한다.
수도 이전과 야당과의 大聯立 構想, 북동 아시아의 균형자論, 北朝鮮과의 融和 政策 등, 모든 외국으로부터 기이한 눈으로 보여지는 듯한 독자 노선도 지지 확대의 정치 수법 이라고 볼 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어렵다. 대통령에 관한 5가지 誤解. 경제 담당 보좌관은 최근, 청와대의 홈 페이지에 이런 문서를 게재 했다.
대통령은 1)경제에 관심이 없다. 2)좌파적이고 反시장적. 3)정책이 과거 지향적. 4)투쟁적. 5)행동이 없고 이야기만 많다. 역으로 이런 이미지가 국민에 정착 하고 있는 중이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노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2년 수개월. 국민에 贊意를 얻으려는 <분노>을 원점으로 하지만, 지지율은 20%대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은 다음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노무현流의 韓國(下)가 계속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