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經濟新聞] 노무현流의 韓國(下)

Date 12/07/2005   Hits 1819

노무현流의 韓國(下)
<獨自 路線 지탱하는 釜山 人脈>
11월 23일, 한국에서 하나의 人事가 관계자의 화제를 휩쓸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식민지 지배 시대의 抗日 獨立運動과 역대 정권의 人權 彈壓 등을 조사.규명 하는 독립 기관의 톱에 부산의 神父인 송기인氏(67세)을 임명 하는 것을 정했다. 대통령에 있어 송氏는 인권 변호사와 정치가에의 길을 열어준 恩師로 <精神的 支柱>. 정권의 最重要 과제의 키를 맡겼다.
<비록 국익과 경제를 손상 시키더라도 일본이 마음으로부터 반성할 때까지 요구를 완화 해서는 안 된다>, <조선 반도로부터 미군 철수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정부가 우선 손을 잡아야 한다>. 송氏의 持論은 노대통령의 주장과 아주 닮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방어 자세를 취한다.
대통령制의 한국에서는 官僚의 힘이 일본에 비해서 약하고, 소수의 대통령 측근이 큰 영향력을 갖는다. 최근 대두해 온 것이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을 지탱하는 부산 그룹.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상담하는 상대> 라고 알려진 것이 문재인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52세). 부산의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에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져, 수감장에서 사법시험의 합격 통지를 받았던 에피소드를 남긴 인물 이다.
문氏가 대통령과 무릅을 맞댔을 때, 정책의 진행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적지 않다. 청와대,내각,여당 수뇌가 국정 전반의 중요 안건을 정기적으로 협의하는 통칭 <12인 회의> 에도 참가 한다.
청와대에서 그림자 처럼 노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부산 3人組(한국 미디어)>의 최후의 한 사람인 이철호 국정상황실장(46세). 대통령 앞으로 보내어 지는 모든 정보는 모두 일단은 이철호氏를 통한다. 관료들에게 있어서는 정보의 殺生 與奪權의 권리를 갖고 있는 존재 이다.
이철호氏가 학생 운동에서 구속 됐을 때에 변호를 담당한 것이 당시 변호사 였던 노대통령. 대통령이 중용하는 <386세대(현재 30-40대로, 8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고 60년대에 태어남)>의 형님 이다. <前 정권까지에 비해서 청와대가 순식간에 젊어짐으로 해서 知日派가 상당히 줄었다>(청와대 관계자) 라고 하는 사정도 한국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宋,文,李氏에 연관된 사람이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노대통령의 부산 인맥을 형성 하고 있다.
<韓日은 동맹 관계가 아니다>. 4월의 한국 국회. 북동 아시아 지역의 균형자의 역할을 한국이 담당 한다 라고 한 新外交 구상은 韓美日 連携와 맞지 않는다 라고 지적한 야당 의원에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47세)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
북조선 문제의 연구자로서 2001년,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 있던 노대통령에 외교 안보 정책을 강의한 인연으로 정권에 들어 왔다. 부산 인맥이 아니지만, 북조선을 비판하는 데에는 우선 상대의 사상과 이론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는 논거를 취한다. 대통령의 자문기관의 넘버 2이면서 대통령과의 관계가 깊기 때문에 對북조선 정책, 對美 정책의 중심 인물이 되고 있다.
<변화 하는 한국>을 요구하는 여론을 자기편으로 하여 노대통령이 한국 정계의 정점에 등장하고부터 약 3년. 서울로부터 400KM이상 떨어진 부산에서의 濃密한 인간 관계가 盧政權의 정책을 읽는 열쇠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