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韓中, 어떻게 대처?(下)
<日本의 重要性,相對的으로 低下>
구체적인 숫자를 봐 보기로 하자. 韓日간의 무역액은 30년 전과 비교해서 18배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체 무역액에 점하는 韓日간의 무역 비율은 어떻게 될까? 30년 전, 韓日간 무역은 전체 무역액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비율은 15%을 하회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의 사이에 日中 무역액은 역시 18배 이상 되었다. 그러나 日中 무역이 중국의 전체 무역에 점하는 비율은 9% 가깝게 저하 했다. 중국의 전체 무역액이 30배 이상 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인 것은 人的 交流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20년 전,1년간에 일본을 방문 하는 한국인의 수는 현재의 1/6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비율은 한국인 출입국자수의 40% 이상을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을 하회 하여 일본은 중국에 이어 제2의 출입국 處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한국과 중국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과 중국에 있어서 일본의 중요성도 변화 하고 있다. 냉전기, 중국과 소련과 국교를 갖지 않고 유럽과는 지리적.역사적으로 멀고,유엔의 議席조차 갖지 못했던 한국에 있어서(유엔 가입은 1991년), 日本,美國과의 관계야말로 사실상 국제 관계의 전부 였던 것이었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에 있어서도 또한 이전의 일본은 중요한 존재 였다. 1970년대 초의 美中 화해에 충격을 받아 바로 중국과의 국교를 정상화 한 일본은 천안문 사건 이후에도 양호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 온 많치 않은 국가의 하나고, 중국에 있어서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며 또한 주요한 투자국의 하나 였다. 한국과 중국에 있어 이전의 일본은 현재보다도 훨씬 중요한 국가 였다. 때문이야 말로 그들은 일본의 動向에 배려를 지불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경제 성장과 냉전의 종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로벌化는 상황을 一變 시켰다. 냉전의 종식은 南北朝鮮의 대립을 과거의 것으로 하고 이전은 미국을 사이에 두고 사실상의 동맹 관계였던 韓日 양국은 안전 보장상의 이해조차 달리 하게 되었다. 중국의 경제적 팽창은 성장을 지탱하는 자원의 핍박을 초래 하여, 이전에는 행복한 수직 무역의 파트너였던 中日은 이제는 東지나海에서 또한 시베리아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잃어 버린 10년>이라고 불리워지는 일본의 장기 불황의 산물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성장을 계속 하고 글로벌化의 와중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지금은 近隣의 경제 대국, 일본조차도 세계 속의 하나의 국가에 불과 하다 라고 하는 것이다. 글로벌化에 의한 선택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近隣 諸國의 존재를 相對化 시킨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고 역행 시키는 것은 용이치 않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 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 하지 못하고 종전 대로 한국과 중국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이라면 그들은 때때로는 우리의 요구에 응하고 협력해 주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우리가 그 어떤 것 하고도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 이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배경에는 低下 하는 일본의 존재감을 알게 된 양국의 여론의 변화가 있다.
이전의 한국인과 중국인은 역사 문제는 제쳐 놓고도 일본의 경제에는 일정 이상의 敬意를 나타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국에서는 경제 분야에 있어서 조차 일본을 경시 하는 논의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 논의에 지나침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생활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도 또한 부정 할 수 없다. 여론은 그들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의 중요성을 상대하게 이해 시킬 필요가 있다.
<時間 經過에 의한 問題 解決은 곤란>
결국 현재의 상황은 구조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한국도 중국도 알아 줄 것이다 라고 생각 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 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먼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필요 하다. 문제의 근본이 近隣에 있어서 우리의 존재감이 감소 하고 있는 것에 있다 라고 하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고,어떤 의도를 갖고,왜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해 가는 것이 필요 하다.
예를 들면, 현재의 일본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 방침을 정리해 제시하고 약속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일본의 <右傾化>에 불안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안전 보장, 그 이외에 대한 의도와 능력을 알기 쉽게 제시함으로 해서 상대국 여론에 일본의 군사력이 위협이 아닌 것을 알려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역사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6월에 고이즈미 수상이 말한 것처럼, 정부가 A급 戰犯者는 <전쟁 범죄인 이다 라고 인식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면, 국회에 대해서가 아닌 상대국 정부와 여론을 향해 역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 견해를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그것은 또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논의도 없는 채로 상황이 악화해 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낳다.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將來像에 대해서 진지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투명성 있는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재확인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염려해야 하는 것은 近隣과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리를 輕視하고 완전히 잊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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