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經濟新聞] 戰後 60年, 經濟(下)

Date 12/20/2005   Hits 1955

戰後 60年, 經濟(下)

<農地 解放, 中産 階級 誕生 / 西室泰三 동경증권거래소 會長>
일본의 앞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戰後의 뉴스는 무엇이라고 해도 전쟁에 패배한 것이다. 敗戰이라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일본 사회 구조를 바꾸고, 그것이 일본의 奇蹟的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특히 <農地 解放과 財閥 解體> 이다.
<農地 解放>은 소작농에 넓은 사유지를 배분하여 농촌이 윤택하게 되어 아이들도 많이 태어났다. 이러한 아이들이 노동력이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오게 되므로 해서 대량의 중산층 계급이 생기고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財閥 解體>는 본래의 경제 질서를 파괴 했다. 해체.분할된 기업이 戰後의 신흥기업과 함께 일본의 경제성장을 지탱 했다. 占領軍은 일본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지만,결과적으로 일본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기반 하에 격심한 인플레에서도 국민의 저축 성향이 상당히 높게 되었다. 이로서 일본 국내의 자본으로 대부분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발전을 이룩 하였다.
이렇게 해서 쌓은 경제 시스템은 1991년 이후 크게 변했다. 버블 붕괴 뿐만이 아니고 冷戰 종결로 참 의미에서의 글로벌 경쟁시대가 시작 되었고, 세계가 크게 변화 했다. 지금까지 軍需産業에 체류 했던 자본과 기술이 민간으로 흘러 들어 반도체로부터 IT(정보 기술)의 혁명이 시작 되었다. 이 변화에 일본의 국가도,기업도 5년,10년간 대응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 기업은 다른 국가가 강하게 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 할 수 없었다. 2000년대 초에 IT 버블이 붕괴 되면서 일본 기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 한다.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개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정부도 90년대 후반의 橋本(하시모토) 내각 때에 省廳(정부기구) 再編 等의 행정 개혁과 금융 빅뱅을 실행하고 경제 시스템의 전환에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행정 개혁은 아직 불충분 하다. 土光(도코우/당시 수상 이름) 개혁에서는 國鐵(JR)과 電電公社 등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은 과감함이 부족 하다. 하지만 國鐵과 電電公社의 상황은 위기적으로, 직원의 스트라이크와 거액의 적자 등 정말로 방만한 경영 체질이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호응을 얻기 쉬었다.
지금의 과제는 국민의 이해를 얻기 어렵다. 예를 들면, 日本郵政公社(우체국)의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官業에 의한 郵貯,簡保,郵便의 독점으로 350조엔에 이루는 거액의 자금이 公的 부문에 체류하고 있다. 민간과 마찬가지의 경쟁 조건으로 시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의 산업을 강하게 하는 것에는 필요한 것으로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 자체가 효율적으로 운영 되지 않는 한 국력이 약하게 된다. 低出産.高齡化가 진행하는 중에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는 얼마간의 발전 단계가 있었지만, 원래 미국 국무장관인 키신저氏은 <일본은 변화할 수 있지만, 변화에 요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페리 開國으로부터 明治維新까지 15년 걸렸다. 戰後 실질적으로 독립 국가로서 재차 걸음을 내디딘 것은 15년 후인 1960년 였다 라고 말한다.
1991년에 버블이 붕괴 했다. 15주년 設에 근거 하면 2006년은 일본 경제가 새로운 비약으로의 움직이는 해가 된다. 더욱 官으로부터 民으로의 진행 하는 것을 기대 하고 있다.

<輸出 依存, 엔高가 終止符 / 行天豊雄 前 財務官>
戰後 경제 최초의 轉機는 변동 환율제에의 이행을 시행한 1970년대 초의 블레톤우즈 체제의 붕괴였던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 한다. 일본이 수출 주도로 급속한 경제성장 발전을 실현 할 수 있었던 것은 25년에 걸친 1달러=360엔 이라고 하는 이상한 엔低 수준이 이어졌던 것이 배경에 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 의존 체질의 전환을 압박하는 국제적인 警鍾을 급속하게 받아 들 일수 없었다. 明治 이후의 근대 일본 성립의 과정으로부터 이어진 上下型의 官主導 體制를 오랫동안 이어와 전환의 기회가 된 규제 철폐의 움직임이 늦었기 때문 이다.
블레톤우즈 체제 붕괴가 고정환율제로부터 변동 환율제로의 질적인 변화였다 라고 하면, 플라자 합의(1985년9월 뉴욕시의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5개국 경제장관회에서 高달러의 是正을 위해 각국이 협조하여 적극 개입하기로 결정한 합의)는 양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
1990년대 末의 버블 붕괴가 2번째의 轉機. 안으로부터는 금융 위기로 상징된 체제 피로가 노출 되고, 밖으로부터는 글로벌제이션이 야기한 투명성과 설명 책임의 원칙이 일본에 다시 한번 개혁을 강요 했다. 버블 붕괴 이후는 관료와 자민당 파벌 정치의 密着에 의한 정책 결정의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 했다.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구조 개혁으로 움직인 것은 평가해도 좋다.
버블은 수출 주도형의 경제 구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官의 發想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국제적인 엔高 압력에 대하여 일본은 수출하의 景氣 자극책을 강요 당했지만, 舊 大藏省이 財政 出動을 걱정하여 금융 정책에 부담이 집중해 버렸다. 본래는 미시적 분야의 구조 개혁에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개혁 의식이 충분치 않았다.
2번의 석유 쇼크를 거치면서 경제성장이 정체하여 수출 의존형 경제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라고 하는 불안이 있었다. 정부와 정당, 금융기관 경영자의 사이에 문제 의식이 배양 되어져 있으면 훨씬 빨리 개혁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버블의 위력에 무력하게 되어 버렸다.
구조 개혁은 착수 했지만, 아직 규제 철폐에 동반한 민간의 힘이 충분히 발휘 되어지고 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정치가도 관료도 기득권의 유지하고자 하는 힘이 강하고 政.官.財의 서로 의지하는 것에 의해 舊來型의 경제 구조가 붕괴 되지 않고 있다. 官主導가 이어진 결과, 정치는 관료와 연결되어져 있지 않으면 정책을 생각처럼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민간이 낙하산 인사를 받아 들이는 것도 관료 OB가 인맥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 이다. 談合 사건이 露呈한 경우에 경제 사회로서 제재하는 구조가 갖추어져 있으면 기업도 낙하산 인사를 당연히 받아 들이지 않게 된다. 이어지는 담합 사건은 구조 개혁이 충분하게 진전하고 있지 않는 것을 상징 하고 있다.
향후의 진로에서는 미국에의 의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 하다. 미국의 覇權 大國으로서의 지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감퇴 한다 라고 생각 되며, 일본도 장기적인 외교 비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인가? 환태평양권에 있어 日美 관계를 중시할 것인가?
일본이 세계 중에서 경제적인 영향력을 계속 갖으려고 하면, 법 정비와 회계제도,감사,IT(정보 기술) 등 소프트 인프라 정비도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인프라 정비의 움직임은 상당히 늦다. 머리로의 생각만으로는 잘 진행 되지 않는다. 실제로 상거래에 관련한 민간 시장으로부터 수요가 탄생하여, 그것을 학자와 관료가 지탱하는 體制로 이행 할 수 있을까?가 일본 경제의 興亡盛衰의 키를 쥐고 있다.

<美日 摩擦을 克服, 企業 進化 / 山口信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朝鮮(6.25)戰爭으로 일본경제는 蘇生하여 고도 경제성장에 들어갔지만, 朝鮮戰爭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도 변했다. 미국은 일본을 봉쇄하는 정책으로부터 중요한 파트너로의 인식에 근거한 정책으로 전환 했다. 그것이 195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섬유 수출 급증으로 다시 한번 관계가 악화 되었다.
미국은 수입 금지는 관세무역일반협정에 위반하기 때문에 일본에 자유규제를 요구 하였다. 그것에 旭(아사히)化成 등 일본의 섬유업계는 <업계가 무익하게 된다>라고 강하게 반발 했다. 오끼나와 반환시에 佐藤榮作 首相이 自主 規制를 약속 했다 라고 하지만, 당시의 通産相 4대에 걸친 과제로 발전 했다.
섬유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섬유 업계는 사업의 다각화와 고도화 등 구조 전환을 진행할 수 있었던 면도 있었다. 일본이 선진국에로 발전하는 과정의 한 단면 였다.
그 후, 자동차,금융 등 여러가지 마찰이 日美間에서 일어 났지만, 日美 관계의 악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양호한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향후도 最重視 해야 하는 국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