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力으로 不斷한 價値創造(上)
吉川 洋/東京大學 敎授
<人口 減少 克服,情報 등을 軸으로 競爭優位를 >
인구 감소 시대에 돌입한 일본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는 정보 등의 분야를 축으로 한 새로운 附加價値의 創造가 요구 되어진다. 거기에는 부가가치의 원천인 人的 資本,즉 사람의 수가 아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能力으로서의 <人間力>을 전략적으로 연마(배양)해 가는 것이 불가피 하다.
<제2의 變革이야말로 將來를 위해 必要>
<대개 萬國의 상태를 보면 그 문명의 발달은 變革의 功에 의한 것이고,후퇴는 반드시 舊習에 힘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1875년(명치 8년),維新의 變革이 진행하는 중에 <變革의 弊害>를 논하는 자가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抗議로서 쓴 신문에의 투서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草間時福 이라고 하는 22세의 청년 이었다(후에 言論界.官界에서 活躍). 草間은 변혁을 멎게 한 것이 아니고 維新에 이은 <第2의 變革>이야말로 일본의 장래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다 라고 논했다.
120년 전에 草間이 간파한 것처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시대의 변화,그 중에서도 우리들을 둘러싼 국제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부단히 변하지 않으면 쇠퇴 한다. 1980년대 장기 침체에 빠져 고민하던 미국은 스스로의 약점을 直視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해 再生 했다. 당시 널리 읽혀진 MIT 대학의 改革 提言 <Made in America>(1989년)는 “To live well, a nation must produce well(잘 살기 위해서 국가는 잘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세상을 깨우치는 말을 提言 했다.
개혁을 진행 시키는 데에는 어떠한 시대의 변화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알면 개혁의 방향은 자연히 결정 되고 왜 개혁이 필요한가도 당연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갖고 여기에서는 역사를 뒤 돌아 보고자 한다.
일개 국가의 강점이 어디부터 생기는가는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주요 산업 였던 세계의 철강업은 모두 철강석과 석탄의 産地에 위치(立地) 했다. 이러한 예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얼마 만큼 타고난 천연 자원이 있는가가 결정적 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분명 타고난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가 유리한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것은 산유국을 보면 분명 하지만,현재에서는 그것이 一國의 경제적 번영에 있어서 반드시 결정적인 요인이 아닌 것이 되었다. 이유는 원재료.자원의 운송비가 저하 했기 때문이다. 수송 기술의 진척이 자원 보유국의 절대적 우위를 무너뜨린 것이다. 일본의 고도성장을 지탱한 하나의 요인도 戰後 해상 운임이 현저하게 저하하고,1배럴=3달러 등의 저렴한 석유 가격이 실현한 점이 있다.
<英國 百年의 繁榮,情報力의 貢獻이 크다>
나폴레옹 전쟁으로부터 第1次 世界大戰까지 100년의 번영을 구가한 영국의 경험을 되돌아 보는 것도 유익하다. 19세기 전반,당시의 주력 산업 이었던 綿(면)工業을 보면 영국은 정말로 <世界의 工場> 이라고 하는 이름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생산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번영은 결코 섬유 산업과 철강업 등 제조업의 힘만으로 일으킨 것은 아니다.
19세기 전반부터 제1차 대전까지 약 100년간에 걸쳐 영국의 경상 수지는 거의 일관되게 흑자를 이어 갔고 자본을 해외에 수출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일본인에게 있어 의외인 것은 이 기간 동안에 무역 수지가 흑자였던 해는 거의 없었다 라고 하는 사실이다. 영국은 그러한 무역 수지의 적자를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는 거기에 가까운 서비스 수지의 흑자가 이어진 것이다.
서비스 수지 흑자의 핵심은 해상 운임 수입,세계 중에서 활약하는 商社의 수익,보험료 수입 등 이었다. 19세기는 공업 생산도 그럴만하지만 국제무역이 급속히 擴大한 시대 였다. 영국은 그 국제 무역에 필요한 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창출한 서비스 수지 흑자의 배경에는 <7개의 바다를 制覇한 英國 海軍力이 있었다>. 동시에 뛰어난 정보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30년 전에 미국 예일大의 도서관에서 에도(江戶)말기에 영국에서 발간된 중국.일본의 안내서를 발견,그 상세함에 놀란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幕末 최후까지 幕府를 응원한 프랑스에 비해, 영국은 薩長의 승리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있어서도 情報力이 국가 번영의 기초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교훈으로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야흐로 이제는 일본은 세계 NO.I의 對外純資産 保有國으로 작년도는 처음으로 해외 자산이 낳은 이자.배당 등의 <所得 收支>의 흑자가 무역 수지의 흑자를 상회 했다. 그러나 그 수익률은 아직 낮다. 정보력이 부족해 있는 것이다.
戰後의 일본 경제는…
☞.<人間力으로 不斷의 價値創造(下)>가 계속하여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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