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原因은 人事에 있다
<人材의 倉庫를 人材의 寶庫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평가 받기 위해서 일하고 있다. 異性에 인기가 있고 싶어하는 것은 異性에 평가 받고 싶기 때문이다. 승진 하고 싶다는 것은 회사로부터 평가 받고 싶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 싶은 것은 가족과 세상에 평가 받고 싶기 때문이다. <評價>는 우리들 인생의 근본에 관련한 키워드이다.
기업에 있어서 사람에의 평가는 <人事 評價>라고 말한다. 문자대로 人事 評價는 <人>의 評價와 <일(事)>의 評價로 大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람(人)>에의 평가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가?싫어하는 사람인가?>라고 하는 “좋고 싫음의 평가”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의 “性善.性惡說”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일(事)>이라고 하면 本質論을 벗어나 오로지 <저 사람은 열심히 하고 있는가,어떤가?>,<저 사람은 殘業을 하고 있는가,어떤가?>라고 하는 精神論이 중심이 되고 있다.
확실하게 말해서,<좋고 싫음>과 <善惡>으로 사람을 평가 하면 조직은 반드시 부패 한다. 상사가 부하를 싫어하면 부하도 그 이상으로 상사를 반드시 싫어하게 마련이다.싫은 부하에게도 호감을 받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을 말하거나 하는 상사는 가련(불쌍함) 그 자체이다. 결국 최후에 싫은 사람의 평가는 반드시 나쁘게 평가 하기 마련이다.
또한 좋은가 싫은가?의 善惡 判斷은 거의 主觀的인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인격이 나쁘다 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결국,높은 사람(上司)의 취향에 맞는 사람이 출세 할뿐이고 좋은 사람인가,나쁜 사람인가?의 판단은 개인적인 취향의 범주를 넘을 수 없다. 출세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인격이 높다 라고는 당치도 않는 착각이다. 그럴듯하게 부하를 說敎 하거나 正論을 펴더라도 부하들은 <당신에게 듣고 싶지 않다>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다.
<좋고 싫음>과 <善惡>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불공평한 행위이기 이전에 愚(우)를 범하는 행위이다. 생산성을 일부러 나쁘게 하는 것이다. 企業에 있어서 <사람(人)>의 평가는 <適性인가,어떤가?>,<適合한가,어떤가?>의 評價이지 人格論이 아니다.
다음은,<일(事)>에 대해서 이다. 열심히 하는 것을 美德으로 하는 것에 반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평가 대상이 된다면 기업에는 僞善과 欺瞞(기만)의 폭풍이 거칠게 불어 댄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평가 받기 위해서 사원은 본래의 목적과 고객을 무시하고 열심히 해 버린다. 더 기질이 나쁜 것은 진짜는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는 데도 열심히 하는 척을 하는 사람이 대량으로 증식해 버리는 것이다. 殘業은 의욕을 보이기 위한 것과 싼 잔업비를 벌기 위한 苦行이 된다. 과장이 퇴근하지 않기 때문에 사원이 퇴근하지 않는다. 부장이 퇴근하지 않기 때문에 과장이 퇴근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事)>에의 평가 방법에서는 사원도 기업도 불행하게 된다. 퇴근하지 않는 사원이 증가하여 自立心도 엷게 된다. 그런 와중에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게 되어 轉職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싼 급여라도 회사에 매달리는 <現狀維持 人間>으로 회사가 채워지게 된다. 現狀維持 人間뿐이기 때문에 社長의 改革과 變革의 호소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社長의 <人事 評價>인 것이다.
역시 회사의 모든 병의 원인은 <人事>에 있다. 上記와 같은 불합리함과 마이너스의 連鎖를 하루라도 빨리 끊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上記의 글은 <이것밖에 없다. 日本의 人事>라고 하는 日本人이 自覺치 못한 日本企業의 人事 問題를 신랄하게 指摘한 책의 序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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