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經濟新聞] 韓日 首腦의 誤算

Date 09/14/2006   Hits 1997

韓日 首腦의 誤算

<首相이 바뀌면 對日 관계를 재검토 하라>. 한국에서 대일 강경 정책을 지휘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주변에 이렇게 지시 했다 라고 한다. <고이즈미 수상의 日本>은 이미 視界에 없다.
수년 전까지 <史上 最良>이라고 일컬어진 韓日 關係.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와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단번에 관계가 악화 되었지만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던 것은 양 수뇌의 <誤算>에 의한 부분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의 5개의 類似点>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과 같은 부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국회 의원 비서의 경험도 갖고 있는 이성룡 한나라당 의원은 작년 8월,이런 분석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①상식과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별난 사람(變人)>, ②정면 돌파로 돌파구를 개척, ③적을 만들어 강력한 동지를 모은다. ④배수의 진으로 전투력을 높인다. ⑤국민에게 직접 묻는다 &#8211; 이다.
<기득권의 타파>를 천명하고 보수 세력에 맞선 노 대통령이 구조 개혁에 반대하는 <저항 세력>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 정책을 추진한 고이즈미 首相에 共感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수상이 잘 나가면 나도 잘 나갈 수 있고 실패 하면 나도 실패 한다 라고 생각 했다>. 2003년2월,서울에서의 취임식 후 최초의 수뇌 회담에서 대통령은 고이즈미 수상의 양손을 힘껏 움켜 주었다.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라고 대통령은 예상 했을 것이다. 특히 韓日의 역사 문제와 對北韓 政策에서의 파트너,韓美 關係의 仲介役을 首相에 期待하고 있었다 라고 한국의 정부 관계자는 증언 한다.
2004년 여름에는 <임기에 역사 문제를 쟁점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한국 정계의 禁忌(금기)까지 파고 들었다. 그러나 首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 문제는 전혀 회답치 않았다. 對北韓 政策은 <壓力>에 무게 중심을 두었고 對美 關係도 美國 편향을 선명하게 했다. 노 대통령은 <배신 당했다>라고 느꼈다.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 두 사람은 반드시 서로 닮은 동지가 아니다. 3대에 걸친 정치가의 집안에서 자란 首相은 현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실상)을 지근 거리에서 보아 왔다. 사상적으로는 右派(우익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반독재의 기치를 내건 인권 변호사로서 정계에 뛰어든 노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성장 과정이다.
<感性>을 중요시 하고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일면을 갖고 있는 수상에 <고미즈미 수상이라면 나의 理想과 誠意에 응할 것이다>라고 하는 노무현流의 <觀念>과 <精>의 정치가 통하기 어려운 것을 노 대통령은 잘못 읽었다.
역으로 일본의 식민지와 군사 정권 시대의 청산과 북한과의 민족 화해로 정권에 <正當性>을 부여하고 싶은 노 대통령의 생각을 수상은 이해하지 못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보도관을 역임한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주변에 일본 인맥이 없어 일본을 현실적으로 보지 못해 왔다. 큰 기대가 예상과는 달리 어긋났다>라고 政權 構造의 문제점도 지적 한다.

2004년 가을,노 대통령은 <日本軍의 造船 侵略史>(임 종국 著)라고 하는 책을 손에 넣었다. 이 시기부터 <한국에서는 우선 순위가 높지 않았다>라고 하는 야스쿠니 문제가 정부 내에서 對日 攻擊의 主役으로 되기 시작 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 한국이 <우파의 대표>라고 간주 해 온 安倍(아베) 관방장관(차기 首相이 유력)이 변할까 어떨까를 주시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2위와 12위.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작년 일본인이 40%를 점했지만 두 사람의 지도자에 있어서의 <韓日>은 점점 시들해 지고 있다. 3년 반의 손톱 자국(할퀸 흔적)을 없애는(제거 하는) 작업은 용이하지 않다.